고집이란 무엇일까? 과연 고집은 좋은 걸까 나쁜 걸까? 고집쟁이를 상대하는 방법은?
2024.02.13 - [생활과 지혜] - 고집이란 무엇일까? 과연 고집은 좋은 걸까 나쁜 걸까?
일전에 고집쎈 사람들의 관상적 특징에 대해서 올린 적이 있었다. 고집이 쎈 사람들과는 정말로 대화가 힘들다 못해, 심지어 시간적 물리적 정신적인 모든 면에서 유익하지 못하다는 것을 피곤함과 불편함으로 바로 느끼게 된다.
우리 주변에는 고집이 쎈 사람들이 항상 있다. 그 사람 중에서는 여러분 자신일 수도 있다. 고집이 쎈 사람들과의 교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사람들을 지치고 힘들게 한다는 점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0.7% 차이로 대통령이 되어 국가의 정체성과 경제 등을 망쳐놓는 최악의 어리석은 자, 자기가 어리석은지를 전혀 모르는 최악의 인물인 윤두환 떡여리의 똥고집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분노와 한숨이 끊이지 않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 경제 위기, 안보 위기, 치안 위기, 민생 위기 등등 전국민적인 분노와 위험으로 폭탄처럼 여겨지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고집에 대해서 깊이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고집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고집이 쎈 것은 과연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고집이란 우기는 성미, 즉 한 번 정한 자기 의견을 바꾸지 않고서 굳게 내세워 우기는 것을 말한다. 고집이 쎄다는 것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고집은 화합을 하지 못하고 소통이 되지 않는다. 고집이 쎌 수록 마치 흐르지 않고 고이며 썩은 물과 같고, 산소가 통하지 않는 막힌 공간과도 같다.
사람들 중에서 고집이 있을 수록 좋다고 하는데, 그건 고집이 아닌 다양한 배움과 산경험을 두루 갖추어 얻게 된 지혜와 처신이다. 고집이 강한 사람일 수록 이런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의 반대이다. 어리석은 고집쟁이는 고통과 괴로움을 몰고 다니는 빌런 중의 빌런이다. 반면 지혜로운 사람은 고집을 부리지 않기에 행복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그 대표적인 역사적 인물로서 이순신과 원균을 들 수 있다. 이순신 장군께서는 소통과 통찰과 수많은 정보의 검증과 증명으로서 지혜롭게 전장을 승리하던 성웅이였던 반면, 원균은 이와는 완전히 반대로 권위의식과 자기 만의 착각에 빠진 고집불통이었기에, 칠천량해전에서 이순신이 피땀흘려 이루어낸 대부분의 조선수군을 전멸 괘멸시켜버렸다.
그렇다면, 고집불통인 사람들, 고집이 쎈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뼛속 깊이 내 생각, 내 것, 내 마음, 내 의견, 내 주장, 나의 것 등등, 오직 나라고 하는 생각에 강한 집착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불교에서는 ‘아상’이라고 한다. 아상에는 크게는 2가지 또는 4가지로 분류한다. 두 가지는 나라는 주관적인 생각에 대한 집착인 아견과, 내 것이라는 아소견 또는 아집과 아소집으로 나누고, 네 가지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으로 나뉜다. 인간의 모든 고통과 번뇌는 바로 이 아상에서 나오는 것이다. 반대로 아상을 제거해야 인간은 삶의 모든 고통을 초월하고 벗어나게 된다. 그것을 바로 해탈과 열반이라고 부른다. 조용한 산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본래 '나'라는 것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 것이 본래 실체라는 것을 조금씩 조금씩 깊고 깊게 성찰하게 된다. 그리고 명상을 꾸준히 하다보면, 이 '나'라는 것은 허망하고 영원하지 않은 것임을 자각하게 되어 나에 대한 집착에서 조금씩 멀어진다. 이 허망하고 영원하지 않으며 무상한 '나'를 집착하기에, 여기서 온갖 삶의 고통과 괴로움이 다 일어나고 생기는 것이고, 온갖 어리석은 무지함이 '나'라는 집착에 일어나는 것이며,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하고 '나'라는 어리석은 색안경으로 바라보아 나쁜 문제를 스스로 만들어내며 타인과의 갈등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나'에 대한 집착에서 업이라고 하는 카르마가 생기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 카르마는 바로 여러분들의 세세생생 태어나고 죽고를 반복하며 살아온 ‘나 라고 하는 마음작용의 습관’이 되어 여러분들의 사주팔자와 관상과 타고난 성격이 되어 금생에 신구의 삼업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신구의 삼업이란 몸으로 나타나는 업, 말로 나타나는 업, 행동으로 나타나는 업을 말한다. 즉 각자의 아상에 집착할 수록 고집으로 드러나게 되는데, 이것이 몸과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게 되어, 모든 괴로움과 고통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여하튼 이 나라고 집착하는 마음이 매우매우 강한 사람들, 즉 고집이 쎈 사람들은 내가 항상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줄 모른다. 항상 내 의견이 맞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지혜가 부족하고 인생을 다양하게 접해보지 못한 편협적인 사람들의 특징이다. 그래서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경청과 소통을 할 줄 모른다. 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자기 말을 남에게 설득시키고 주입시켜 자신의 이야기를 주장하는 것밖게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는다. 마치 음식을 고루 먹지 못하고 편식을 좋아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래서 법구경에서 전해지는 부처님말씀 중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어리석을 수 있음을 생각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지혜롭다고 어리석게 착각한다”고 했다. 이런 어리석은 자의 가장 적합한 표상은 바로 바로 용산에 살고 있는 술독에 빠진 미친 멧돼지 한마리인 윤가놈이다. 이동훈 조선일보 논설의원이 말하길, 윤가놈은 대통령이 된 그때부터 지금까지 1시간 회의를 하면 59분 가까이 자기 말만 할 뿐, 아랫사람들의 현명한 의견을 듣지를 않는다고 했다. 더 나아가 윤가놈은 자신은 하늘이 내린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회의시간에 떠들어댔다고 한다. 또한 회의 때 다른 사람들 조언도 듣지 않고 오히려 ‘나를 가르치려 든다며 화를 낸다고 했다. 아상이 강해서 자기 뿐만 아니라 그와 연관된 모든 인연들에게 강하게 꽉 막힌 그 사람의 아집 아상으로 인해서 고통과 괴로움을 초래하게 된다. 그리고 정작 본인들은 본인의 고집에 따른 불통과 어리석음 때문에, 자타가 모두 괴로워한다는 것을 절대 모른다. 그래서 대한민국에 이낙연과 윤가놈 두 인간 때문에 현재 국민들이 문재인 전대통령때부터 나라가 거꾸로 갔던 것이었다. 비현실적인 이기주의 몽상가 문재인 전 대통령의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 결국 이낙연을 뽑아서 내부 인사들의 어리석음을 자초했고, 윤가놈이 굉장히 악질적인 최악의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하고서 뽑았기에, 대한민국이 2년도 안되어 총체적 위기의 난국으로 고꾸라진 것이다.
그렇다면 고집을 어떻게 없앨 수 있느냐?
고집을 없애는 가장 방법은 단 하나. 깊은 명상을 통해서, 고집의 실체가 없다는 것. 모든 고집의 원인인 '나'라는 실체, 이 '아상'이 본래 없는 공함을 깨닫는 것이다. 이 고집, 즉 나라고 집착하는 모든 생각과 주관과 가치관 뿐만 아니라, 나라는 이 몸과 생각은 업과 번뇌에 의해 그저 인연따라 생성되었다 사라지는 것이지, 영원한 것이 아니고, 항상하는 것도 아니며, 고정되어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창조주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아닐 뿐더러, 독립적이거나 자립적이고 뭔가가 영원히 있는 것이 절대 아닌 존재임을 명상을 통해 알게 된다. 이것을 바로 '무아'라고 한다. 이렇게 내가 없는 그 실체, 즉 선불교에서 말하는 본래면목을 바로, 초기불교에서는 무아라고 이름으로 부르고, 후대에는 이를 공 또는 공성, 무자성이라고 이름한다. 선불교에서는 '일체고액', 즉 깨달으면 일체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라고 중국에서 왜곡된 반야심경을 근거로 말하는데,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단 고집을 줄여가는 것이다. 고집이 완전히 없어지면, 우리의 인생은 무의미해지고 교만해질 수 있다. 고집에 대한 자기의 모순의 고통으로 인해 우리는 개선의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번뇌가 곧 지혜이고, 지혜가 곧 번뇌이다.
이 고집을 없애는 길, 고집을 없애서 고통과 괴로움에서 영원히 멀어지는 길은 곧 생과 사를 초월하는 길,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와 같은 답으로 귀결된다. 이는 오직 깊고 깊은 명상(집중명상과 분석명상, 지관쌍수, 사마타와 위빠사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실 금생만으로는 모두 없앨 수 없다. 그리고 이는 단지 지식적으로 이해해서 아상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즉, 무아를 깨닫는 것이 업과 번뇌덩어리로 이루어진 이 아상, 모든 고통과 괴로움의 원인인 이 아상, 즉 고집을 없애는 최고의 길이다. 그래서 누구나 지혜로워지고 나다운 삶을 삶을 살면서 고통과 고통의 원인에서 멀어지고 행복과 행복의 원인에 가까워지려면 필수적으로 반드시 명상을 해야 한다.
어떻게 고집이 쎈 사람, 고집쟁이를 상대해야 하나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고집쟁이와 상대해서는 안 된다. 가장 친한 관계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를 설득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가까운 가족조차 바뀌지 않는다. 사람의 천성 즉 카르마는 몇 생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다. 단 그 고집쟁이에게 그동안 인생관이 뒤흔들만큼의 크나큰 충격적 고통과 괴로움이 일어나 이를 스스로가 개선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지 않고서는 바꾸지 않는다. 그래서 옛말에 천성이 바뀌면 죽을 때가 되었나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다. 그러므로 시간적 물리적 정신적인 소모를 할 필요 없이 인연을 멀리하거나 피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다.
그리고 부부관계에서 상대가 지나친 고집으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상대에 대한 집착이나 애착을 할 필요없이 헤어지면 그만이다. 헤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상대에게 이익 볼 것이 있거나 의지하기 떄문에 자신이 참는 것이다. 억지로 참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그렇기에 스스로가 남에게 의지하지 않을 자립심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또한 회사나 단체와 같은 곳에서 어쩔 수 없이 부딧치는 경우에는 때로는 묵빈대치로서 마음을 주지 않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다. 자신이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자타 모두 인정할 때에, 그 인연은 자연스레 멀어지고 그 단체에서 벗어나게 된다. 고집은 부정적인 에너지의 원인이다. 부정적인 에너지를 일으켜 부정적인 생각을 일으킬 원인을 내 마음에서 지혜와 처신으로서 극복해야 한다.